저는 10년 동안 교육적인 목적으로 보드게임에 참여해 왔고, 그동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사람들과 보드게임이 얼마나 유용한지 이야기할 때면 저는 아주 빨리 이런 이야기들로 화제를 넘기곤 합니다. 이미 수없이 많이 들려준 이 이야기들을 마침내 하나로 엮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게임과 게임 상황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반응만큼 저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보드게임 교육학의 작용을 주제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논거로서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가장 강력했습니다.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은 다음, 자리에 앉아 게임을 많이 플레이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만의 이야기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들
초콜릿
확실히 이것은 제대로 된 교육자라면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책에서 배운 원칙들을 내려놓게 되는 수많은 순간이 있지만 이것은 정말 과장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된 교육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마지막 순간은 2023년 봄에 모든 아이들이 며칠 동안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모여 있기엔 벅찬 튜토리얼 센터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소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공예품 만들기, 보드게임 같은 단체 활동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며칠 동안 테이블에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합리적인 대답은 아이들이 그것을 타고났다는 것입니다. 2023년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은 2013년 톨드(Told,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서 보드게임을 시작했을 때 보통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준비된 튜토리얼 센터, 밝은색의 보드게임 선반, 게임을 즐기는 일상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보드게임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앉아서 생각하고 배우고 새로운 규칙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 어렵습니다. 가족생활에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이 포함된 아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입니다. 당시 우리는 헝가리 카드게임, 포커, 우노, 9멘스 모리스 같은 게임들만을 미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썩 훌륭한 미끼들은 아니었죠. 우리는 이제 막 발견했던 멋진 추상 게임과 현대 보드게임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외적 동기는 나쁘고, 내적 동기는 좋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내적 동기를 발달시킬 수 있는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적 동기가 생기지 않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부받은 초콜릿 달걀이 꽤 있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 하지 않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초콜릿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별로 좋게 들리진 않죠? 저희 역시 기쁘지 않았지만 진전(breakthrough)을 위해 단 하나의 작고 중요한 단계, 즉 게임을 직접 시도해보는 것만이 부족할 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자원봉사자로 거의 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일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가져온 많은 게임들이 그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맞았습니다. 초콜릿을 주자 보답으로 그들은 보드게임을 하려고 앉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가 초콜릿을 주지 않았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게임을 하려고 앉았습니다. "초콜릿은 어디 있어요?" 몇몇이 물었습니다. "게임이 재미있지 않았니?" 우리는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아, 네, 재미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돼지(Pig)
이것은 우리의 첫 번째 대성공 중 하나였습니다. 2013년에 이 모든 보드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에겐 돈도, 게임도,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슈카(요제프 예스틀)가 저희에게 돼지(Pig) 게임을 가르쳐주었을 때 우리는 정말 놀랐습니다. 주사위 단 한 개만 필요했고 규칙은 간단했지만 게임으로서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가르치고 있던 아이들 역시 초보자였기 때문에 너무 복잡한 것으로 시작할 수 없었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짧은 플레이 시간, 간단한 규칙, 최소한의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돼지 게임은 주사위 한 개만 있으면 됩니다. 목표는 가장 먼저 100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만큼 여러 번 주사위를 던질 수 있으며 언제든지 멈추고 누적된 점수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단, 숫자 1이 나오면 해당 라운드의 모든 점수를 잃고 차례를 넘겨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본질적으로 의사결정의 순간들이 있는 운 게임입니다. 게다가 게임 중에 현재 점수 상황이나 특정 상황에 맞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이 금세 명확해집니다. 이 게임을 통해 점차 발전할 수 있으며 저는 여전히 교육, 워크숍, 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놀라운 단순함과 더불어 교육적인 깊이를 즉시 알아보고 바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처음부터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훌륭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올바른 위험 관리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자신 있게 게임을 소개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멈추지 않고, 점수를 확보하지 않으며, 인내심이 없다면 그들은 이길 수 없습니다. 숫자 1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죠. 이것이 보드게임 교육학의 핵심입니다. 게임에 내재된 사건을 통해 학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첫 번째 세션 중 하나에서 가장 말썽꾸러기 아이 한 명이 자기 라운드에 무려 100점까지 한 번에 도달해 버린 겁니다. 주사위 1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채 30번이나 던진 셈이죠. 가능성은 작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확신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가끔은 이 방법이 통한다는 것이죠. 과연 누구의 말이 맞았을까요? 자격을 갖춘 교육자일까요, 아니면 아이일까요?
이 이야기의 반전(하지만 교훈은 아닌!)은 그 아이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멈추고 승리를 선언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항했고 100점을 훨씬 넘어서도 멈추지 않다가 결국 숫자 1이 나오면서 라운드를 끝냈습니다. 점수는 0점이었습니다.
로마에 영광을(Glory to Rome)
교육적 목적으로 보드게임을 사용하면서 얻은 첫 번째 주요 깨달음 중 하나는 일부 게임에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텍스트가 있는 곳에서는 읽기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즉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고 실험하는 것이 독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올바른 텍스트 이해 능력을 개발할 기회는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이상적으로 보드게임은 특정 게임에 더 어려운 요소가 있더라도 우리가 동기를 부여받고 참여하는 자율적인 활동입니다. 게임 상황에서 우리는 평소의 익숙하고 편안한 영역(comfort zone)의 한계를 조금 더 쉽게 넓히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습 상황에서는 책 읽기를 꺼리던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할 때면 상대적으로 문제를 덜 겪거나 적어도 더 쉽게 설득된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즐기고 우리가 좋은 게임을 보여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완전한 게임 경험을 위해 필수적이라면 기꺼이 읽으려고 합니다. 이를 활용하는 것이 보드게임 교육학의 본질입니다.
한번은 소년 그룹에게 "로마에 영광을(Glory to Rome)"이라는 보드게임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플레이 시간이 약 60분 정도 되는 꽤 복잡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것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처음 몇 게임은 조금 양보하여 카드의 효과가 적용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물론 완전한 경험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하면 게임을 배우고 플레이하는 것이 훨씬 쉬워집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타협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학습 세션이 한 번 끝난 뒤 나이가 좀 더 많은 소년 중 한 명이 추가 규칙을 배우고 이제 제대로 게임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학교에서 버림받고 동기가 없는 아이로 낙인찍힌 소년이 자유 시간에 더 큰 도전을 요구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자유 시간을 할애해 수십 장의 카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요청이 특히 특별했던 이유는 제가 그에게 읽으라고 도저히 설득할 수 없었던 학습 세션 직후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게임을 하려고 앉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그가 직접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고 그저 속으로 기뻐하며 그때부터 이 이야기를 여기저기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니까요.
땀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고통받다
교육자는 그러나 기뻐하고, 만족하며, 즐거워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징적인 어떤 이상하고 본질적으로 사악한 반응이 아니라 무한히 직업적인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확히 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할 수도, 받을 수도 없으며 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당시 우리는 보드게임을 활용한 교육 운동의 아주 초기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가 쉬웠습니다. 시씨(Sissi)는 비공식(불법 복제?) 헝가리어 버전의 러브 레터(Love Letter)였습니다. 요즘은 러브 레터를 살 수 있지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었습니다. 총 16장의 카드로만 구성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불법 복제하기 아주 쉬운 유형의 게임입니다. 캐릭터는 총 8가지입니다. 새로 만들기도 쉽고 팬들이 수정한 버전을 찾기도 쉽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이 요슈카(Jóska)에게서 얻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자 저에게도 사실이지만, 구할 수 없는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실제로 게임을 많이 사기도 하므로, 윤리적인 문제는 여기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씨 테마의 16장 카드와 함께, 글을 잘 읽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거친 소년들인 몇 명의 어린 십 대 소년들과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활자에 대한 일종의 혐오감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에게 읽기 게임을 권하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권했습니다.
러브 레터는 우리 소년들만큼이나 아주 멋진 게임입니다. 손에 카드를 한 장 들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다른 카드를 한 장 더 뽑은 다음, 누군가를 쓰러뜨리거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빠르고, 흥미진진하고, 똑똑하고, 장난스럽죠. 도중에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게 무슨 대수겠어요? 알고 보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게임에 앉아 있고, 글 읽기를 싫어하고 잘 읽지 못하는 아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카드를 뽑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참조 카드를 꺼내어 자신의 카드를 해석합니다. 당신을 쳐다보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만, 아이들은 당신을 사냥하려고 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군가의 카드를 안다면 그 사람은 아주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카드를 보여줄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땀을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괴로워합니다.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는 문장이 되며 그 문장에는 게임에 영향을 미칠 어떤 의미가, 완벽하게 맥락에 맞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작은 전사는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희망합니다. 바로 그것이 아이들이 기어코 글을 해독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글을 해독해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곳, 플레잉 카드 뒤에 숨은 아이들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왜 교육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해야 하는지, 왜 게임 그 자체의 효과가 발휘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이는 근위병 카드를 내려놓고 왕이었던 우리들을 게임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일어섰다
이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통 이야기하고 다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맞을 겁니다. 이것은 튜터링(방과후 학습 지원) 세션에서 찍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운 좋게 그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에 사진으로도 남아 있고 제 머릿속에도 생생히 살아있는 이미지입니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참여와 동기 부여,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기존의 특성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관한 것 같습니다.
사진과 블로그 포스트로 기록된 이 사건은 2013년 가을에 발생했습니다. 두 소년이 서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게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었죠.) 소년들은 테이블에 서서 게임을 즐겼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가 테이블에 앉아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커뮤니티에서 현대 보드게임을 사용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서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우리 없이도 말이죠. 동기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취미 생활을 위해 더 이상 우리(어른)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은 항상 대단한 순간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튜터링 세션의 목표이며 보드게임 교육학은 이 과정을 가시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리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저는 소년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이푸르(Jaipur)'를 플레이하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매우 훌륭한 2인용 카드 게임입니다(제가 게임에 끼어들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당시 십 대들이 스스로 움직이던 구조보다는 더 복잡한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는지, 건전한 신경전의 선을 넘고 있지는 않은지, 게임 플레이의 역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일어나더니 곧이어 다른 아이도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단 1초도 게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제 생각에 자신들이 서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게임은 그들을 움직이게 했고 그들은 서로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었습니다. 자이푸르에는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모으고 있는 카드를 상대방이 가져갈까? 내가 원하는 카드를 뽑게 될까? 시장 상황이 바뀔까? 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내 차례를 마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은 대립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흥분과 감정, 충돌이 충분히 정당화됩니다. 물론 모두 보드게임의 메커니즘, 이야기, 분위기의 틀 안에서 말입니다. 그들이 일어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학교로부터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는 말을 계속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 관심사, 취미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보드게임은 주로 테이블에서, 주변에 앉아서 진행됩니다. 여기에도 테이블이 있었고 보드게임이 있었지만 두 소년은 서 있었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저조차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뭔가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기사들
저는 페널티나 핸디캡을 주는 여러 방식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동시 진행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 1명 대 어린이 여러 명이 대결하는 거죠. 이런 경우에는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이기면 팀 전체가 이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 친구 요제프 예스틀은 이것을 기사들이 용을 무찌르는 것이라고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저희 튜터링 캠프 중 한 곳에서 우리는 추상 게임 대회와 팀 대항전을 조직했습니다. 어린이 4명과 성인 1명이 대결하며, 팀원 중 누구라도 이기면 팀이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이야기에 또 다른 반전은 각 팀에 대, 중, 소 세 가지 어드밴티지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드 하나에는 어드밴티지가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보드에서 경기할지 결정하는 것은 팀원인 아이들 몫이었습니다. 누가 가장 큰 어드밴티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에는 가장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에게 가장 큰 어드밴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개 이런 대답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한 팀을 제외한 저희 캠프의 모든 어린이 역시 똑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 팀은 가장 큰 어드밴티지가 있는 보드에 자신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를 앉히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아이들이 더 깊이 생각했는지 아니면 단순한 예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요) 꽤 논리적입니다. 게임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의 보드에서 이기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네. 그렇다면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의 승리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그에게 가장 큰 이점을 주는 것이 실제로 바람직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 대회를 고안했을 때 저희 역시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 앞에 놓인 가장 큰 어드밴티지를 보았을 때 저희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추상 게임에 정말 능숙하기 때문에 핸디캡이 전혀 없었더라도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였을 아이였습니다. 아이들이 이겼습니다. 저희 또한 승리했습니다. 그런 결정들이 내려지고, 그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게임을 진행하고 그것이 옳았음이 증명될 때 교육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언박싱
하지만 여기서 저희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고전적인 제품 언박싱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상자를 해체하거나 펼치는 행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시죠?
보드게임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짝이나 그룹, 팀 단위의 아이들이든 누구든지 간에 결국 특정 게임에 푹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게임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시 경험하고 싶은 공유된 게임 경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게임들을 꽤 많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그중 다수는 누군가 재미있는 파티 게임을 너무 계속 가져오려고 해서 저희가 숨겨야 했던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저 소수의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집착하는 게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톨디 튜토리얼 센터(Toldi Tutorial Center)에서의 우리의 시작과 아주 아름답게 연결되는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는 한여름 내내 카르카손(Carcassonne)을 정말 많이 플레이해서 그 이후로는 게임 박스를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그것이 매우 자랑스러웠고 무척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고전이자 현대 보드게임 중 필수 타이틀로 꼽히며,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꽤 깊은 사고력을 요구합니다. 특히 당시에 그와 비슷한 깊이의 게임을 거의 해본 적 없던 어린이 그룹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카르카손을 둘러싸고 형성된 열풍은 보드게임 교육학의 깃발 아래 톨드(Told)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강력한 지표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잔디밭 위 축구장에서도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신체 활동 전후에 카드 게임을 하고 풀밭 그늘에 눕는 것은 꽤 멋진 일이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여전히 일반적인 게임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카르카손은 이것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꽤 넓은 공간과 평평한 표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상자를 찾았고 그것을 쫙 펼쳐서 운동장으로 가져갔습니다. 청년, 초등학생 소년과 함께 제가 게임을 하고 있고 유치원생 한 명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당시 사진도 남아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디서든 무엇이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훔치기
저는 상황이 매우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규칙을 위반하고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으며 가해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을 재구성해 줄 수 있는 교육적 상황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한번은 야외 캠프 시간 중에 한 소년이 자원봉사자와 교육자들의 가방에서 인페르노(Inferno) 카드 게임을 훔친 적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주 적절한 제목의 게임이었죠. 우리는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게임은 중단되어야 하고 카드는 반납되어야 하며 (교육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다시 한번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아이들은 모여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규칙에 맞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았을 때, 우리가 이 어린 플레이어들에게 이 게임을 아직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들 주변에 어른이 없다는 사실도 눈치챘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방에서 게임을 훔친 아이가 팀을 모아 규칙을 가르치고 게임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면, 아이가 보드게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든 우리의 능력에 우리 스스로 등을 두드리며 칭찬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도라는 행위는 상황을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그 당시 캠프의 프로그램은 다른 것이었으므로 그는 다른 활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금지된 장소에 손을 뻗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갔습니다. 아이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무의미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 누군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 상황에 있던 교육자인 바로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도, 그 소년(제 기억이 맞다면 약 6살이었습니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 사건을 이러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통제하거나 형성하지 못한 것도 모두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처벌은 생략되었지만, 다음번에는 남의 가방에서 물건을 마음대로 꺼내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일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와, 어른 없이 아이들 스스로 게임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쁨과 자부심의 문제였습니다.
비겁하게 두려워하기
두려움과 불확실성에는 많은 얼굴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저는 튜터링 센터 블로그에 딕싯(Dixit)에 대해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집중적으로 보드게임을 1년이나 한 뒤에야 우리는 아이들에게 딕싯을 소개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획기적이고 세계를 정복했으며 그 이후로 가족 모임에서 필수품이 된 바로 그 고전 게임 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 게임을 충분히 잘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규칙이 매우 복잡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없는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딕싯 게임을 상상해 본다면 우리가 보았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방금 제가 한 말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합시다. 누가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게임 세션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우리(어른들)와 다르게 게임을 한다고 해서 한쪽의 게임 방식이 틀렸다는 뜻일까요? 그들은 둘러앉아 그림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그림을 맞췄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딕싯을 플레이했습니다. 아주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말이죠.
또 다른 두려움이 생각납니다. 정글 스피드(Jungle Speed). 낚아채야 하는 커다란 나무 토템. 누가 더 빨랐는지, 대결이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액션 카드가 무효화했는지, 카드가 제대로 뒤집혔는지 등에 대해 말다툼하기 아주 쉬운 속도감 있는 게임입니다. 게다가 그 커다랗고 단단한 나무 토템도 있죠. 우리는 이 게임을 하기 위해 2016년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무렵 이 게임은 아이들과 함께 자원봉사자 및 교육자 팀을 위한 우리의 상징적인 팀 빌딩 오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보여주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역대 가장 치열했던 정글 스피드 말다툼 상위 5개를 떠올려보면 거기엔 아이들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어른들, 우리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걱정하는 바로 우리 말입니다.
침묵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침묵이 보드게임의 가장 진실한 매개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육자가 왜 침묵에 이끌리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운 것은 아이들만의 특권입니다. 그것을 듣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지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침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요청이나 명령으로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3가지 게임에서 침묵과 관련된 강렬한 경험을 했습니다.
프루트 믹스(Fruit Mix)의 침묵. 제가 가장 좋아하는 헝가리에서 개발된 카드 게임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이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하고, 아직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야 합니다. 보기 드물게 높은 수준의 성찰(introspection)을 요구합니다. 평소처럼 무심코 카드를 뽑고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서서히 눈을 떼지 못하고 속으로 숫자를 외우기 시작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기억의 리듬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조용해집니다.
키위(Kiwi)의 침묵. 우리는 키위의 길을 따라가지만 오로지 마음속으로만 따라갑니다. 이동 카드를 해석하고 마음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길을 제시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곳에 있는 작은 키위를 상상합니다. 이 게임은 곧바로 침묵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평소처럼 수다를 떨고 주변을 둘러보며 게임을 시작할 수 있지만 이 게임은 그런 행동에 대해 매우 적은 점수로 보답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당신은 조용해집니다.
해피 새먼(Happy Salmon)의 침묵. 아시나요? 2분간의 광기. 시끄러운 박수와 하이파이브. 그것은 당신의 에너지를 솟구치게 했다가 다시 가라앉힙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새로운 규칙을 하나 소개합니다. "말하지 않기". 그러면 움직임의 휙 소리, 신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 카드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
관련 읽을거리
스팸은 절대 보내지 않습니다. 언제든 구독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세요!
저희 콘텐츠가 마음에 드시나요? 친구들에게 저희 페이지를 공유하여 응원해 주시고, 더 많은 가족과 교육자들이 놀이를 통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러분의 공유가 정말 큰 변화를 만듭니다. 저희 커뮤니티의 멋진 일원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